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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I Surf
서핑의 즐거움에 관한 다소 진지하고 디테일한 이야기
“서핑이 왜 재밌어?”
서퍼들은 한번쯤 지인에게 받았을만한 질문이다. 주말마다, 휴가마다 파도 탈 생각만하고 도심의 커피샵에서도 틈틈이 앱을 통해 파도 차트와 웹 캠을 확인하는 모습이 유난스러워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새까만 개미옷같은 웻슈트를 사더니 100만원에 달하는 서핑 보드를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지를 않나 기어코 sk엔카에 들어가서 서핑 스팟을 함께 탐험할 중고차를 알아보기까지 한다. 양양은 죽도가 성지고 제주는 중문이 유명하고 코로나 이후에는 꼭 발리에 가고 싶고 … 도대체 서핑이 뭐길래 저렇게 미쳐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만한다.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던져진 질문을 받고 서핑의 즐거움에 대해 길고 자세하게 대답하고 싶지만 그/그녀는 30초를 넘기지 못하고 아프리카 초원의 가젤처럼 멀리 도망갈 게 뻔하다. 발 빠른 지인을 좇아 소모적인 달리기를 하기 보다는 “그냥 재밌잖아”라며 대화를 흘러가게 놔두는 편이 낫다. 하지만 질문을 받았을 때 떠 오른 생각들 마저 흘려 보내기에는 아쉽다. 이 생각들을 잘 정리하면 순진한 예비 서퍼를 사로잡을 강력한 덫이 될 것이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덫 앞에 놓여있다.
서핑을 한 줄로 정리하면 오감을 만족시키는 감각적 쾌감과 삶의 깊이를 더하는 정신적 만족감이 잘 조화된 하모니이다.
Sensory
서핑이 선사하는 감각적 쾌감은 상당히 직관적으로 찾아온다. 그린웨이브의 포켓에서 파도를 잡고 보드에서 일어나면 빠르면서도 슬로우 모션으로, 그리고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파도면을 미끄러져 내려온다. 파도 면을 따라 위 아래로 위치를 이동하며 시원한 속도감과 줄을 타는 스릴감을 느낀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롱보드의 행텐, 숏보드의 에어리얼/배럴은 새로운 차원의 감각 경험을 선사한다고 한다. 행텐을 하기 위해 롱보드 위를 걸을 때는 물 위를 걷는 듯한 초인간적인 쾌락이 찾아오고 보드 끝에 양발을 걸면 물 위를 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전해진다. 숏보더는 에어리얼을 통해 새가 되어 하늘을 날기도 하고 배럴 안에서 라이딩을 하며 물고기가 되어 바닷속을 고속으로 헤엄치기도 한다.
서핑은 또한 다른 감각도 흠뻑 적셔준다. 서핑은 바다에서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별 다른 노력없이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 감각기관에 담을 수 있다. 물 때에 맞추어 새벽에 바다 위에서 파도를 기다릴 때면 칠흙같은 어둠이 밝은 빛으로 바뀌는 장면을 온전히 눈에 담는다. 이내 태양은 파도면과 입맞춤하며 보석같은 윤슬을 만들어낸다. 적당한 파고, 피리어드, 풍향이 절묘하게 맞으면 파도는 진주알처럼 반짝거리며 계속해서 다가온다. 라인업에 둥둥 떠있으면서 해변 쪽을 바라보면 조금 전까지 두 발을 딛고 서 있던 땅이 보인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보지 못했던, 내가 머물고 있었던 땅의 다채로움과 견고함이 눈에 들어온다. 황금 빛 모래로 시작하여 회갈색의 절벽, 푸른 숲과 산맥까지, 선명한 색감의 향연이 펼쳐진다. 해질녘에는 붉은색, 다홍색, 핑크색으로 립스틱 색깔을 바꿔가며 태양은 파도와 작별의 키스를 나눈다.
한 세션을 마치고 해변에 털썩 주저 앉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다가 이내 벌렁 드러누워서 눈을 감으면 다른 감각이 살아난다. 바다 전체에 울리는 파도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선선하게 부는 바람도 귓바퀴에 자연스럽게 머물다가 떠난다. 멀리서 첫 라이딩에 성공한 병아리 서퍼의 환호성, 뒤에서 열심히 가르쳐주고 밀어주던 노련한 강사님의 감탄의 함성이 찾아와 그들의 얼굴에 번진 미소를 그려주고 간다. 봄철에는 막 노래를 시작한 휘파람새가 고운 선율을 뽐내며 돌아다닌다. 비가 와도 오히려 좋다. 딱딱한 서프보드 위에 다양한 비트를 찍으며 역동감 있는 노래를 들려준다.
서핑의 매력은 감각적인 쾌감에 정신적인 만족감이 결합되면서 완성된다. 정신적인 부분은 누군가에게는 서핑 중에 자연스럽게 찾아오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오랜시간 서핑을 한 후 회고를 하던 중에 찾아오기도 한다.
Philosophical
서핑은 자연과 함께하는 동양철학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동양철학에서는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였고 우리나라 역시 이전부터 자연과 함께 하는 삶과 즐거움을 강조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서 스며들어있다.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배우는 조선시대 시조를 보면 자연과 함께하는 즐거움, 자연에 대한 예찬이 큰 줄기를 형성한다. 교과서 어딘가에 실려있을 아희야, 무릉이 어디매요, 나는 옌가 하노라 라는 구절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단적인 예이다. 우리의 전통 가옥은 자연을 조금 더 가까이 두고 그 아름다움과 공존하기 위해서 다양한 건축 기법들을 적용해왔었다. 역설적이게도 도시에서 나고 자란 현세대는 이러한 즐거움을 학교에서 책으로만 배울 뿐 직접 접할 기회는 충분하지 않았다. 서핑을 하기 위해 바다에 나가면 비록 파도를 많이 못 잡더라도 자연과 함께하는 정신적 충만함은 부족함 없이 채울 수 있다. 기계적인 동력과는 한발자국 멀어져서 자연이 선물해준 파동을 느끼며 아날로그적 감성을 회복하기도 한다. 부드러운 파동에 몸을 맡기며 더 멀리, 더 높게, 더 크게, 더 빠르게를 외치는 도시의 감성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
일관적이진 않지만 서퍼들이라고 언제나 안온한 마음으로 자연과 함께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자신의 노동을 투입하여 자연을 소유한다. 찰나이긴 하지만 자연을 소유한 경험은 또 다른 정신적 만족감을 준다. 서퍼들은 60리터 남짓한 부력을 가진 보드 위에 앉아서 파도를 관찰하며 야수의 심장으로 결단을 내리고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한 곳으로 집중한다. 파도를 잡게 되면 파도 안에 응축된 에너지를 이용하여 재밌는 라이딩을 이어나간다. 피크에서 라이딩을 시작한 서퍼는 이 파도가 자신의 파도라며 숄더에서 파도를 잡은 서퍼에게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한다. 파도의 소유권 관련하여 서퍼들 간에 큰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서퍼들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이 갈등이 낯설 뿐만 아니라 어이없기까지 하다. 하지만 자연이 준 선물인 파도가 자신의 파도라는 주장은 서양 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표적인 사회 계약론자로 알려진 존 로크는 “신이 인간의 주인이긴 하지만 인간의 노동의 과실은 인간의 소유이다”라며 개인의 소유권을 옹호한다. 서퍼는 자신의 에너지를 투입하여 파도의 피크 근처로 이동했고 알맞는 때에 알맞는 강도로 패들링을 하여 파도를 잡았으니 파도를 소유할 수 있다. 숙련된 서퍼일수록 더 자주, 더 길게 자연을 소유하는 경험을 하고 이 때만큼은 강렬하게 자기 자신을 알아차리고 현존하게 된다.
Intellectual
파도를 잡아 타는 행위는 지적인 활동으로 보상을 얻는 과정으로, 서퍼에게 자기 효능감을 불어넣어준다. 모든 서퍼들은 수련과 노력을 통해 서핑에 필요한 지식을 얻고 실천을 통해 체득하고 결국에는 파도를 잡고마는 경험을 한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요소들은 집안, 배경 등 사회적으로 결정된 것들이 아닌 성실함, 끈기를 기반으로 얻는 파도에 대한 이해, 물체의 운동에 대한 이해 등 자신의 지적 활동으로부터 파생된 것들이다. 사실 초보 서퍼에게는 안좋은 소식이지만 파도를 잡아 라이딩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정도의 지식이 필요하다. 보드의 부위에 대한 명칭, 파도 부위에 대한 명칭도 단번에 외우기 어려우며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바다에서 소금물 범벅이 되어도 어떤 원리로 파도가 보드를 그냥 지나가지 않고 밀어주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거품파도를 쉽게 잡는 단계가 되어도 여전히 그린 웨이브를 잡는 원리를 터득하기는 쉽지 않다. 유투브에서 파도의 생성원리를 찾아보기도하고 다른 서퍼들의 설명도 들으면서 기반 지식을 쌓아나간다. 왜 자신은 계속 노즈다이빙을 하는지 복기해보고 능숙한 서퍼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바다에 나가 파도를 관찰하며 자신만의 데이터를 쌓는다. 때로는 멋지게 그린 웨이브를 잡으며 긴 라이딩을 하기도 하지만 기상에 따라, 계절에 따라, 장소에 따라 파도는 항상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기 때문에 능숙한 서퍼가 되기 위해서는 갈길이 한참 멀었다는 걸 뼈져리게 느낀다. 쇼어에 앉아서 고난도 기술을 구사하는 서퍼를 보고 있으면 파도의 움직임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현자의 그림자가 함께한다. 세상의 수많은 서퍼들은 똑똑한 현자가 되기 위해 오늘도 가설을 세우고 지상 연습을 하고 바다에서 실험하고 복기하며 끊임없이 학습한다.
Insightful
서퍼들은 바다에 나가 인생의 교훈을 배우고 돌아오기도 한다. 각자가 만나는 바다는 다른 모습의 선생님이기에 여러가지 교훈이 있을 수 있으나 여러 서퍼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공통적인 교훈은 자연 앞에서의 겸손함이다. 바다에서는 내가 아무리 애쓴다고 해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참 많다. 어제까지만 해도 파도를 이리저리 가지고 놀며 능숙한 서퍼처럼 신나게 서핑을 했지만 다음날 거세진 파도에 노즈를 박기도 하고 라인업 사이에 갇혀서 계속 통돌이를 당하기도 한다. 바다 속에서 몇 바퀴 구르다보면 깊이도 방향도 전혀 가늠을 할수가 없다. 이내 어제 파도를 타며 가졌던 우쭐한 마음은 깨끗하게 씻겨나간다. 라인업 사이에 갇혀 몇번의 통돌이를 당하다가 리쉬코드마저 끊어져 바다 한가운데에서 계속해서 무서운 파도를 만났던 적이 있다. 파도 아래에서 회전하면서 리쉬를 철저하게 확인하지 않은 자신을 책망하고 오랫동안 숨을 참으며 한번만 살려주시면 바다에 나올 때 항상 겸손하게 오겠다고 용왕님께 기도하기도 했다. 이미 온몸에 힘은 빠졌고 서핑보드 없이는 도저히 혼자서 쇼어까지 나갈 자신은 없다. 호흡 사이에 절박하게 살려달라고 외쳤고 다른 서퍼의 도움과 격려로 겨우 쇼어까지 수영을 해서 나왔다. 도움을 주었던 서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자마자 모래에 털썩 주저앉았다. 일상을 살면서 우쭐하는 마음이 생기고 겸손한 태도가 작아질 때마다 파도 사이에 갇힌 그날을 생각하며 자신을 바로잡으로 노력한다.
Resilient
서핑은 좋은 멘탈 훈련법이다. 우리가 보통 심한 좌절감을 맛보는 경우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목표했던 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이다. 얼마나 더 열심히 노력해야 목표를 이룰수 있을까라는 절망감을 느끼기도 하고 적은 노력으로 너무나도 쉽게 목표를 이룬 친구 혹은 동료를 보며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서핑을 하는 라인업에서도 대동소이한 일이 자주 일어난다. 파도를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패들링을 해도 잡히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면 보드를 돌려서 다시 내가 있던 자리로 거슬러올라가고 팔의 힘은 점점 빠져간다. 마음은 조급해지고 급한 마음에 파도도 제대로 보지 않고 냅다 패들링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패들링을 잘한다면 파도를 다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더욱 가혹하게 몰아세운다. 하지만 자신에게 엄격해질수록 어깨는 지쳐오고 파도는 잘 보이지 않는다. 반나절 동안 바다에 떠 있었지만 라이딩을 한 파도는 손에 꼽는다. 해답은 타이밍에 있다. 자신을 좋은 위치에 위치시키는 곳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위치를 결정했다면 그 자리에서 내 파도를 담담히 기다려야된다. 내 파도가 왔을 때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준비되어있어야 한다. 내 파도가 아닌 파도를 억지로 잡으려고 애쓰면 어깨 힘만 빠지고 나에게 좋은 파도가 흘러가는 걸 넋놓고 바라만 봐야할 수도 있다.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양보를 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 번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선물을 줄 수 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집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가 없다. 그 타이밍은 단지 내 파도가 아니었고 나는 담담히 내 파도를 기다리며 그 타이밍이 왔을 때 멋지게 라이딩할 준비를 하면 된다.
Social
서퍼들은 스포츠를 통해 소속감을 느낄 수도 있다. 작게는 자신이 매일 서핑을 하는 해변에서 지역에 사는 친구들과 친해지며 서핑 버디 그룹을 형성한다. 내가 느끼는 즐거움에 공감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한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감정을 느끼다보니 서핑 버디가 연인, 부부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서핑 버디처럼 직접적으로 알지는 못하더라도 같은 해변에서 서핑을 하다보면 매일 마주치는 서퍼들이 있다. 이분들과도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약한 정도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비록 이름이나 연락처도 모르고 함께 대화를 길게 해본 적은 없지만 서로가 서로의 안전하고 즐거운 서핑을 응원하고 위기의 상황에는 주저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아주 넓은 의미에서는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내적 친밀감을 느끼며 서핑이라는 주제로 엮은 거대한 커뮤니티에 자신도 소속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스스로 서퍼라고 부르는 걸 자랑스러워하며 서핑이라는 단어가 나의 정체성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중간에 덫을 탈출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온 당신은 이미 서핑의 매력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이제 그만 모니터를 끄고 해변으로 나가서 시원한 파도를 맞이하자.
Special Thanks to 김산TV for the Awosone Pi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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